차분한 프로바둑 기사들의 '도발 인터뷰' 경쟁 눈길
이동훈 "꼬장 부리지 마"…신진서 "다른 선수들 이겨야 결승에서 만나"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프로바둑 기사들은 보통 침묵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관중도 없는 조용한 대국장에서 오직 바둑판과 바둑돌만 바라보며 수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최근 신세대 기사들은 거침없는 입담으로 대국 분위기를 더욱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평소 조용한 기사로 손꼽히는 이동훈 9단이 포문을 열었다.
이동훈은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쏘팔 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에서 박영훈 9단을 꺾은 뒤 인터뷰에서 다음 대국 상대인 한국 랭킹 1위 신진서 9단에게 거침없는 선전포고를 했다.
일단 신진서에 대해 "워낙 성적이 좋고 강한 기사다. 상대 전적도 제가 많이 밀리고 있다"며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상대 전적은 좀 많이 밀려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용히 그냥 '꼬장'(공연한 심술) 부리지 말고 그냥 잘 있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격한 단어가 들어 있었지만 웃음을 섞어서 한 말이었다.
이 인터뷰는 방송을 타고 신진서의 귀에 그대로 들어갔다.
이동훈의 도발은 신진서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신진서는 23일 쏘팔 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 대국에서 이동훈에게 흑 불계승을 거뒀다.
대국 후 신진서는 이동훈의 인터뷰를 봤다면서 "사실 그때 밥 먹고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소화가 잘 안 됐던 것 같다"며 웃었다.
바둑계에서 도발적인 인터뷰는 흔치 않았기에 조금 놀랐다는 설명이다.
신진서는 "일단 약간 깜짝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은 도발이라고 생각했다"며 "승리욕이 좀 더 자극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동훈과 맞대결할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진서는 다음 상대인 김지석 9단에 대해 "바둑적으로나 외적으로 다 배울 점이 많은 좋은 사범님"이라고 존경을 표하며 "좋은 성적을 항상 내시기 때문에 엄청 어려운 바둑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인터뷰 진행자가 '도발적인 한 마디'를 부탁하자 신진서는 "결승에서 만나려면 다른 선수들 이기고 올라와야 할 것"이라며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쏘팔 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은 국내 바둑 랭킹 1∼8위에 있는 최정상급 기사들이 출전해 우승을 겨루는 대회다. 우승 상금은 7천만원, 준우승 상금은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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