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완장 벗은 한선수, 살아난 '세터 본능'…"경기에만 집중"(인천=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10년간 주장을 맡다가 코보컵 때 완장을 떼고 나갔는데 그래도 주장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지석이에게 주장을 넘겨준 후 저는 세터 역할에만 집중하니 마음은 편한 것 같습니다."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베테랑 세터 한선수(40)는 12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 2025-2026 V리그 홈경기에서 3-0 셧아웃 승리를 이끈 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방에서 열린 2라운드 첫 경기에서 승점 3을 따낸 데다 소속팀이 2위에서 선두로 올라서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이다.
한선수는 이날 1세트부터 선발 출전해 외국인 주포 카일 러셀과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 정한용에게 자로 잰 듯한 토스를 배달한 건 물론 미들블로커 듀오 김민재, 김규민의 속공을 끌어내는 등 경기를 완벽하게 조율했다.
그는 57차례 세트를 시도해 37차례 성공하며 64.9%의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이날 외국인 주포 카일 러셀(등록명 러셀)과 토종 공격수 정지석이 나란히 15점을 뽑으며 성공률 70.6%와 63.2%의 순도 높은 공격을 할 수 있었던 한선수의 안정적인 볼 배급 덕분이었다.
중앙을 책임진 김민재와 김규민의 속공이 빛을 발한 것 역시 '코트 사령관' 한선수의 한 박자 빠른 토스 덕이 컸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난번 (삼성화재와) 1라운드 때 상대 블로커들이 속공을 따라다녔다"면서 "오늘 경기에 들어가서는 우선 상대의 흐름을 파악한 뒤 속공을 쓰다가 그쪽이 따라붙을 때는 측면을 활용했다"고 전했다.
헤난 달 조토 대한항공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한선수가 상대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읽는 배구지능(VQ)이 뛰어나다면서 팀 자체 1라운드 최우수선수(MVP)로 한선수를 지목했다.
한선수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10년간 맡아왔던 주장 자리를 후배 정지석(30)에게 물려줬다.
한선수가 세터 본연의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헤난 감독의 배려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선수는 자신이 주장인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지석이가 자신은 '바지 사장'이라고 하더라"면서 "포지션이 세터이다 보니 특성상 코트 안에서 팀을 끌고 가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여수·농협컵(컵대회) 때도 정지석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선수는 "지석이가 아직은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옆에서 조언할 부분이 있어도 요즘은 섣불리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지석이가 힘들 때면 옆에서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2023-2024시즌까지 통합 4연패 위업을 이뤘던 팀이 2024-2025시즌에는 트레블(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한 현대캐피탈에 밀려 무관(無冠)에 그쳤던 터라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한선수의 의지는 강하다.
그는 "통합 5연패를 놓쳤다. 하지만 우승만 보고 그것에 매이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한선수는 오는 16일 현대캐피탈과 원정에서 시즌 첫 대결을 앞둔 각오도 드러냈다.
당초 대한항공은 지난 달 18일 시즌 개막전에서 현대캐피탈과 격돌할 예정이었지만 국제배구연맹(FIVB) 클럽시즌 일정에 걸려 내년 3월 18일로 경기가 연기되는 바람에 맞대결이 미뤄졌다.
그는 "현대캐피탈과 경기를 빨리하고 싶다"면서 "지난 달 먼저 붙었으면 나았을 텐데 그래도 처음으로 경기하기 때문에 오히려 1라운드 같은 느낌이 든다"며 기대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