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반갑게, 승부는 차갑게…황새와 독수리, 이번에도 대접전
4년 8개월 만에 적장으로 맞대결…최용수의 서울, 승부차기로 승리
최용수 "따뜻한 위로 감사했지만, 이기고 싶었다"…황선홍 "다시 만나자"
(대전=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2020 대한축구협회(FA)컵 16강 최고의 '빅 매치'를 앞둔 15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
시작 직전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한 뒤 그라운드에 들어선 서울의 최용수 감독이 홈 팀 대전 벤치 쪽으로 다가가 '적장' 황선홍 감독 앞에 섰다.
황 감독은 미소로 최 감독을 맞이했고, 두 감독은 한 손을 들어 올려 맞잡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으나 황 감독의 만면엔 미소가 번져 있었고, 최 감독도 함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짝 포옹도 한 뒤 이들은 상대 코치진과도 인사를 나눴다.
4년 8개월 만에 '황새'와 '독수리'가 상대 팀 사령탑으로 만난 장면이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황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와 포항 스틸러스를, 최 감독은 서울을 지휘하며 '국가대표 간판 스트라이커 출신 사령탑' 대결은 매번 화제를 낳았다.
2015년 11월까지 리그에서 8승 5무 5패, FA컵에선 1승 1무(승부차기 패)로 황 감독이 맞대결에서 우세를 보였다.
2015시즌을 끝으로 황 감독이 포항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에 이들은 서울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였다.
2016년 여름 중국 무대로 진출하는 최 감독의 뒤를 이어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이가 황 감독이었다.
2018년 시즌 초반 부진으로 황 감독이 물러난 뒤 위기가 계속된 서울에 최 감독이 돌아와 '소방수' 역할을 해내며 얄궂은 운명이 이들을 감쌌다.
잠시 중국으로 떠났던 황 감독이 올해 초 2부 팀인 대전을 통해 국내로 돌아오면서 두 감독이 맞서는 모습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졌으나 FA컵에서 성사돼 대진 발표 때부터 관심을 끌었다.
인사는 반가웠지만, 휘슬이 울린 뒤엔 한 치 양보가 없었다. 두 벤치에선 지시의 손짓이 멈추지 않았다.
기업구단으로 거듭난 뒤 K리그2 상위권 팀으로 도약한 대전, K리그1에서 부진을 겪으며 자존심 회복을 노린 서울 모두 승리가 절실했다.
먼저 웃은 쪽은 황 감독이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프리킥 기회에서 바이오의 골이 나왔다. 이후에도 황 감독은 침착하게 평소처럼 메모지와 볼펜을 놓지 않고 경기에 집중했다.
'2부리그의 역습'이 예고된 채 전반전이 끝나자 최 감독은 곧장 들어가 후반 대비를 시작했고, 황 감독은 선수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강철 코치와 끝까지 지켜보다가 수비수 이지솔과 한참 얘기를 나누다 라커룸으로 향했다.
최 감독은 후반전을 시작하며 간판 공격수 박주영을 투입해 반격을 노렸다.
황 감독 재임 시절 갈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던 박주영이 투입된 이후 서울의 공세는 한층 활발해졌다.
박주영은 후반 30분 조영욱이 얻어낸 페널티킥의 키커로 나섰다가 실축해 고개를 숙였으나 36분 헤딩 동점 골을 꽂아 두 감독을 들었다 놨다 했다.
페널티킥이 허공으로 날아가자 어두워졌던 최 감독의 얼굴엔 약간 안도의 기색이 비쳤으나 그 직후 수비수 김남춘의 퇴장으로 위기가 이어졌다.
수적 열세에도 최 감독과 서울은 연장전까지 잘 버텼고, 결국 승부차기에서야 승자가 갈렸다. 2014년 FA컵 16강전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8강전 승부차기에서 승리했던 최 감독이 또 한 번 웃었다.
경기 후 최 감독은 "경기 전 황 감독님에게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었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셔서 고마웠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니까, 존경하는 황 감독님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황 감독은 "좋은 승부를 펼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두 팀 다 잘됐으면 좋겠다"면서 "저도 계속 열심히 해서 또 만날 수 있게끔,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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