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신민준 "신진서 연승 막고 우승 확정…'저의 날'이었죠"
한국물가정보 주장으로 활약하며 KB바둑리그 우승 이끌어
입단 동기 신진서의 무패 행진 깨트리며 '자신감 ↑'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마음을 굳게 다지고 준비도 많이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프로 바둑기사 신민준(21) 9단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2019-2020시즌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한국물가정보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신민준은 KB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최종 3차전의 마지막 3국에서 셀트리온의 에이스 신진서(20) 9단을 만났다.
신진서는 28연승을 질주하며 최고의 상승세를 자랑하던 중이었다. 국내 바둑랭킹에서도 신진서가 1위, 신민준이 3위로 신진서가 앞서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민준은 신진서의 올 시즌 바둑리그 전승을 저지하고 팀의 정규시즌·포스트시즌 통합 우승을 확정했다.
2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만난 신민준은 "그동안의 전적(통산 5승 18패)을 생각하면 신진서에게 이긴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팀 우승에 직결되는 승리가 돼서 정말 기뻤다. 그날은 저의 날이었던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신민준과 신진서는 2012년 바둑 영재로 주목받은 입단 동기다. '양신'으로 묶여서 불리는 이들은 친한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신민준은 "신진서와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 챔피언결정전 대국에 대해 특별히 대화하지는 않았다. 신진서도 속상할 수 있는데 저한테는 표현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우정을 자랑했다.
신민준은 이번 경험으로 자신감을 끌어 올렸다.
그는 "이번에 신진서와 대국할 때는 위축되지 않고 마음이 굉장히 편하더라. 워낙 강한 상대였지만 느낌이 좋았다"며 "우리 둘이 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미리 기보를 연구하며 준비를 많이 해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이어 "앞으로도 신진서와 자주 맞붙을 텐데,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큰 승부에서 이긴 경험이 있으니 다음에도 큰 승부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둘은 23일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4강에서 다시 격돌한다.
신민준은 "신진서는 성적과 내용 모든 면에서 기복 없이 완벽하게 하고 있다. 이번에도 어려운 승부가 될 것 같은데, 저도 쉽게 밀리지 않을 것"이라며 "저 나름대로 최선의 준비를 해서 제 실력을 다 발휘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주장으로서 단체전 우승을 견인한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됐다.
신민준은 "주장 2년 차다. 처음 주장을 맡은 시즌에는 부담이 커서 적응을 잘 못 했다.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주장의 역할을 하리라고 굳게 다짐을 했다"며 "예전에는 한 판 지면 연패에 빠지며 흔들렸는데, 이번에는 한 판 져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이길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사실 제가 주장이긴 한데, 나이는 제일 어리다. 한종진 감독님과 강동윤 사범님이 분위기를 밝게 해주셔서 편안하게 잘 따라갔다"며 고마워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둑리그 시상식이 코로나19 여파로 축소 진행된다는 점이다. 한국기원은 매년 성대하게 열었던 바둑리그 폐막식을 취소하고 시상식만 간소하게 치르겠다고 밝혔다.
신민준은 "첫 우승이라 솔직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우승한 것 자체로 너무 기쁘기 때문에 아직은 기쁜 생각만 든다"며 웃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굵직한 대회들이 연기되고 국가대표 연구 활동도 축소됐다.
신민준은 "자유롭게 집에서 인공지능(AI)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요즘 새로 나온 '카타고'라는 AI를 활용해 그동안 부족했던 형세 판단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세계대회가 열리면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금의 컨디션을 잘 유지해서 세계대회 우승을 목표로 하려고 한다. 특히 4년에 한 번 열리는 응씨배가 올해 열릴 차례인데 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크다"고 의욕을 보였다.
신민준은 아직 세계대회 타이틀은 없지만, 세계대회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친 기억이 있다.
2017∼2018년 한국·중국·일본 바둑 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다. 당시 신민준은 한국의 첫 주자로 나서 6연승을 질주, 한국이 5년 만에 우승하는 발판을 놨다.
신민준은 "농심배는 제가 프로가 되고 나서 처음 큰 성적을 낸 대회였다. 그런데 그때는 제가 조금 자만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못 냈다"고 반성하며 "이번에는 바둑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냈어도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세계대회 우승까지 올라갈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성기를 향해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정환 9단, 신진서 9단, 커제 9단 등 세계 초일류 기사들과 대등하게 겨루는 전성기가 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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