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호 장현구 하남직 최인영 최송아 김경윤 기자 = 4년의 기다림이 한 해 더 길어졌지만, 도쿄올림픽을 준비해 온 국가대표 선수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도쿄올림픽만 바라보고 전력 질주해온 선수들은 '골인 지점'이 다시 멀어진 것에 대해 다소 아쉬운 마음을 나타내면서도 이내 "다시 준비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올해 7월로 예정됐던 도쿄올림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2021년으로 미뤄진 다음 날인 25일 펜싱 남자 사브르 세계 1위 오상욱(24)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리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은 했다. 연기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상욱은 최근 2∼3년간 국제대회에서 괄목할 성과를 올려 남자 사브르 세계랭킹 1위까지 오른 한국 펜싱의 금메달 기대주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단체전을 석권하며 올림픽에서도 2관왕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할 무대가 한 해 미뤄진 셈이다.
오상욱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획득에 따른) 기초 군사 훈련 등 여러 일을 올림픽 준비를 위해 미뤄뒀다. 올림픽 연기로 여유가 좀 생긴 만큼 저만의 시간을 갖고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언제 올림픽이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동료들과 좋은 성적을 얻고 싶다"고 강조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체조 도마에서 우승한 양학선(28)은 "전쟁을 제외하고 올림픽이 연기되는 것은 처음이라 연기 소식을 믿기 어려웠다"며 "또 어떻게 1년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도 든다"고 털어놨다.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마음 편하게 몸 상태가 좋을 때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은 것 같다"며 "큰 대회를 준비했다가 한 번 축 처지면 컨디션을 회복하기 어려운 나이에 이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몸을 유지해서 내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목표"라고 각오를 전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여자부 금메달리스트 박인비(32)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불안 요소가 많은 상황인데 올림픽을 연기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며 "또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들을 생각하면 취소가 아닌 연기라서 다행인 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1년 미뤄진 올림픽을 앞둔 각오를 묻자 "당연히 도전해야죠"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대역전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할 수 있다'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상영(25)도 예상한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는 "올림픽이 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준비할 시간을 더 확보했다는 생각과 함께 내년까지 이 긴장감을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복합적인 마음"이라고 전했다.
배드민턴 여자복식 김소영(28)-공희용(24) 조는 세계 랭킹 6위로 도쿄올림픽 출전이 유력한 상황이다.
김소영은 "올림픽 막바지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돼서 솔직히 아쉽고 기분은 좋지 않다"며 "나이도 있어서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는데 아쉬운 마음을 덮고 1년 뒤를 보며 다시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근대5종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길 선수 1순위로 꼽히는 간판 전웅태(25·광주광역시청)도 "그래도 자신 있다"고 단언했다.
2018년 국제근대5종연맹(UIPM) 연간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동메달 획득으로 한국 근대5종 선수 중 가장 먼저 도쿄행 티켓을 따놓고 준비 중이었다.
전웅태는 "개인적으로는 올림픽이 취소만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앞으로의 1년이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이렇게 된 만큼 다시 열심히 준비해보자는 각오"라고 말했다.
지도자들 역시 선수들을 독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박치호 레슬링 대표팀 총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허탈해한다"며 "김현우, 류한수 등이 32세로 나이가 적지 않아 올림픽 1년 연기는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아쉬워했다.
박 총감독은 "선수들이 체중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대표 선발전을 다시 치른다면 현 국가대표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타격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택수 탁구 남자 대표팀 감독은 "예상보다 빨리 연기 결정이 나와 다행스럽지만 주축인 장우진(미래에셋대우)이 첫 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1년이 미뤄져 실망스럽고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부산 세계선수권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지금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현재 남자 올림픽 국가대표 3명(이상수, 정영식, 장우진)의 컨디션이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올림픽 연기의 아쉬움이 더 크다"고 입맛을 다셨다.
반면 야구 대표팀의 김경문 감독은 "선수 건강을 생각하면 연기는 합리적 결정"이라며 "우리 선수들이나 KBO, 각 구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계약 기간인 김 감독은 "내가 먼저 계약 연장을 얘기해 KBO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코치들과 함께 여러 상황을 살피면서 정규 시즌이 개막하면 선수 분석 등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남자 축구 대표팀 김학범 감독은 "올림픽이 연기돼 아쉽지만 건강이 더 중요한 만큼 연기는 바른 판단"이라며 "참가 연령 등 대회 연기에 따른 규정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앞으로 계획을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3세 이하로 연령 제한이 있는 남자 축구 대표팀의 특성상 김학범 감독은 다른 종목 지도자들과 비교해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축구협회도 어떤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