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1년연기] ② 질병에 꺾인 강행 의지…숨 가빴던 연기 결정 과정
끝까지 버텼던 일본·IOC, 코로나19 악화에 결국 '1년 연기'로 선회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으로 인한 연기 결정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2020 도쿄올림픽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난달에 커졌다.
올림픽을 강행하면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 문제가 악화할 수 있고,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관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었다.
그러나 개최국 일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난달 26일(한국시간) 최장수 현역 IOC 위원인 딕 파운드(78·캐나다) 위원이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 도쿄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에도 일본과 IOC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27일 일본 언론과 콘퍼런스콜에서 파운드 위원의 취소 가능성 발언에 관해 "억측의 불길에 기름을 붓지 않겠다"며 "IOC는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천명을 넘은 이달 4일에도,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12일에도 일본과 IOC의 입장은 같았다.
이런 가운데 올림픽 성화는 13일 그리스 아테네 올림피아에서 관중 없이 필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채화됐다.
이 사이 자국 내 상황이 악화한 미국은 자기 목소리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문제로 미국 4대 프로스포츠가 나란히 문을 닫자 사견을 전제로 도쿄올림픽 1년 연기를 희망한다고 13일 밝혔다.
미국의 움직임에 일본과 IOC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통해 올림픽 정상 개최 의지를 밝힌 뒤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올림픽 연기론을 직접 부인했다.
IOC도 주변을 달래기에 바빴다. IOC는 17일 올림픽 예선이 줄줄이 취소된 종목별 국제경기연맹 대표자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한 뒤 정상 개최 추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요지부동이던 일본과 IOC는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면서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19일 참의원 총무위원회에서 "규모의 축소가 없고 관객과 함께 하는 올림픽을 원한다"며 사실상 '대회 연기'를 대안으로 삼았다.
여기에 일본올림픽위원회 야마구치 가오리(山口香) 이사가 20일 공개적으로 올림픽 연기를 요구했다
흔들림 없는 입장을 유지해 비판 여론을 받았던 바흐 위원장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그는 20일 "다른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며 태도에 변화를 줬다.
각국 올림픽 위원회의 공식 성명 발표는 일본과 IOC에 '결정타'를 날렸다.
캐나다는 23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는 처음으로 올해 올림픽이 열릴 경우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같은 날 호주, 뉴질랜드 등이 줄줄이 뜻을 함께하는 성명을 내놨다.
아울러 노르웨이, 브라질, 슬로베니아, 콜롬비아 등 다수의 국가가 올림픽 연기 주장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IOC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하고 올림픽 중계권을 산 미국 방송사 NBC가 24일 오전 도쿄올림픽 연기 결정이 나오면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과 IOC에 버틸 명분과 이유는 없었다. 아베 총리와 바흐 위원장은 24일 밤 전화 통화를 통해 도쿄올림픽 1년 연기에 합의한 뒤 해당 내용을 곧바로 발표했다.
도쿄올림픽이 올림픽 역사상 질병으로 인한 첫 번째 연기 사례로 남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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