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스트레일리가 마운드에 새기는 그리움…'M.R. 04' 의미는
2004년 숨진 외증조부 기리는 의식…"나를 자랑스러워할 단 한 사람"
"등판하는 날 까먹은 적 없어…다저스타디움에 적던 순간 특별했다"
(서울=연합뉴스) 유지호 신창용 기자 =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댄 스트레일리(32)의 마운드에는 항상 'M.R. 04'가 새겨져 있다.
'M.R.'은 외증조부인 마크 로스(Mark Ross)의 영문 앞글자, '04'는 고인이 세상과 작별한 2004년을 가리킨다.
TV 카메라에 스트레일리가 등을 돌린 채 마운드에 뭔가를 손으로 쓰고 있는 장면이 잡힌다면 오늘도 'M.R. 04'를 적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트레일리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리틀리그 시절부터 자신의 야구 인생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외증조부에 대한 가슴 속 그리움을 털어놨다.
그는 "마운드에 쓰는 건 외증조부의 이니셜과 별세한 연도"라며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내가 메이저리그와 프로 리그에서 던지는 걸 보고 가장 자랑스러워할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그건 외증조부"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외증조부가 2004년에 돌아가셔서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던지는 걸 보지 못했다"고 했다. 스트레일리는 201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스트레일리는 "언제부터 내가 이 의식을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는다"며 "하지만 이걸 까먹고 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등판하는 날은 언제나 했다"고 소개했다.
의식은 단출하다. 마운드에 외증조부 마크 로스의 영문 앞글자를 따서 'M.R. 04'라고 쓴 뒤 동그라미를 그린다.
스트레일리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건 밟지 않기 위해서다"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위를 밟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나는 밟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건 내 의식이고 내 게임"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가장 특별했던 순간은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 섰을 때"라며 "외증조부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즌 티켓을 갖고 있었고, 그가 나를 처음으로 야구장에 데려간 곳이 바로 다저스타디움이었기 때문이다. 다저스타디움에 외증조부의 이름을 적던 그 순간은 정말이지 특별했다"고 소개했다.
올해 KBO 리그에 데뷔하는 스트레일리는 롯데의 1선발 후보다. 화려한 빅리그 경력을 자랑한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선발로 활약하며 44승 40패 평균자책점 4.56의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10승 이상을 거둔 시즌이 3차례나 된다.
팀의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아드리안 샘슨이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해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스트레일리의 어깨는 더욱더 무거워졌다.
현 상황으로는 5월 5일 개막전 선발이 확실하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스트레일리가 그날 마운드에 외증조부의 이니셜을 새긴 후 공을 던질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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