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썰매 명장' 이용 "고인 물 되기 싫었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좋은 훈련 환경 만들도록 지원"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고인 물이 되기 싫어 썰매계를 떠나 정치권으로 왔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썰매의 찬란한 성공 신화를 진두지휘했던 이용 전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은 23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이용 당선인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스켈레톤 금메달을 따낸 윤성빈과 남자 봅슬레이 2인승 은메달을 획득한 원윤종·서영우를 키워냈다.
이 당선인은 "평창 올림픽 뒤 체육인에 대한 각종 혜택이 줄어들어 더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심어주기 힘들었다"면서 "후배들에게 더 나은 훈련 여건과 복지혜택을 주려면 내가 의사결정권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이 당선인은 "이념이나 정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잘못된 체육 정책을 내놓으면 더 선명하게 비판하고자 야당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 미래한국당이 19번까지 당선됐는데, 18번이었다. 개표 보면서 진땀 흘렸겠다. 윤성빈이 평창에서 금메달 땄을 때와 비교하면 언제가 더 떨렸나.
▲ (윤)성빈이는 금메달 땄으니까 비유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봅슬레이 2인승에서 기대했던 금메달을 못 딴 뒤에 봅슬레이 4인승에서 예상치 못한 은메달 획득했을 때가 떠오르더라. 4인승 마지막 레이스를 볼 때만큼 개표를 보기가 떨렸다.
-- 정치에 도전한 이유는.
▲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7년 동안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줘야 했다. '평창에서 메달을 따면 썰매 인프라가 구축되고, 더 나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다'고. 그러나 평창올림픽 뒤 전문체육인에 대한 각종 혜택이 줄어들었다. 더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심어주기 위해 할 얘기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체육인들에게 더 나은 훈련 여건, 복지혜택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국회의원에 도전하게 됐다.
--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
▲ 딱히 없다. 평생 체육만 해서 그런지 아는 의원도 없었고…. 야당에서 공천 신청받는다는 기사 보고 덜컥 면접 지원해서 합격했다. 면접에 준비를 많이 해갔는데, 준비한 말은 거의 못 했다. 그저 마음에 담아뒀던 체육인 출신으로서의 목표, 내가 당이 원하는 젊은 인재라는 점을 잘 설명한 것 같다.
-- 전북 전주 출신이다. 야권으로 간 이유는.
▲ 아버지도, 어머니도, 친구들도 태어나서 처음 미래당 찍어봤다더라. 하하…. 이념이나 내 정치적 성향을 고려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체육 정책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를 내려면 여당이 아닌 야당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여당에 가서 당론에 휩쓸려 판단한다면 내가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정부가 올바르지 않은 체육 정책을 냈을 때 더 선명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야당을 선택했다.
-- 국회 입성하면 구체적으로 체육인들을 위해 뭘 하겠나.
▲ 우리나라 최저 시급이 8천800원이다. 열 시간 일하면 하루 8만8천원을 번다. 그런데 국가대표팀 하루 수당은 6만5천원에 불과하다. 한 달 훈련 일수 20일을 꽉 채워도 최대 130만원밖에 못 받는다. 10년, 20년 땀 흘려야 이룰 수 있는 국가대표라는 가치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생각한다.
지도자 처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평창올림픽 준비하면서 1년 동안 집에 27일밖에 못 들어갔다. 그런데도 4대 보험 혜택도 없었다.
이에리사(전 국회의원·탁구인) 선배님 등이 마련한 체육인복지법안 통과 등 체육인 출신 정치 선배님들이 흔적을 남겨두신 과제들을 내가 끝까지 해 보겠다.
--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된 게 가장 큰 현안이다.
▲ 일복이 터진 것 같다. 앞으로 1년간 할 일이 많지 않겠나. 그게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 의원이 아닌 감독 신분으로서는 전혀 도움이 못 됐을 텐데…. 도쿄를 향해 구슬땀 흘린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걱정 없이 1년 더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게 내가 의원으로서 돌봐드리겠다.
-- 썰매계에서 지도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다 던지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2의 윤성빈' 육성을 뒤로하고 정치권으로 간 데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팬들도 많다.
▲ 나는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는 인생의 첫 목표를 이뤘다. 이제는 나보다 더 열정적인 후배들이 지도자로 나서 한국 썰매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게 맞다. 내가 썰매계에 남아 입지를 더 굳힐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게 더 '욕심' 부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고인 물이 되기 싫었다. 나도, 한국 썰매도 안주해서는 안 된다. 내 욕심만, 썰매 종목만 생각하지 않겠다. 한국 체육 전반에 걸쳐 도우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큰 틀에서 장기적으로 썰매계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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