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집콕' 정해성 호찌민 감독 "식당 닫고 거리도 적막"
프로축구 V-리그 중단…"상승세 끊겨 아쉽지만 안전이 먼저"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냉장고가 점점 비어가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정해성(62) 호찌민시티FC감독의 목소리는 '반가움'이 담뿍 느껴졌다.
베트남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격리' 규칙을 강화하면서 베트남 프로축구 V-리그가 중단되자 정 감독은 집에서만 지내는 이른바 '집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정 감독은 사람들과의 접촉도 사실상 끊겨 고국에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 목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호찌민에서 생활하는 정 감독은 1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집 앞에 공원이 있는데 평상시에는 새벽까지 사람들로 붐볐지만 지금은 적막하다"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정 감독은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15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모든 축구 일정이 중지됐다"라며 "팀 훈련도 중단돼 선수들은 집에서 홈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동영상으로 선수들의 훈련 상태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개막한 베트남 리그는 지난 15일 2라운드를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멈춰 섰다.
2018년 12월 호찌민시티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 감독은 지난 시즌 14개 팀 가운데 12위에 그쳐 겨우 강등을 면한 팀을 재건했다. 지난해 리그 선두까지 성적을 끌어올리는 등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 감독은 베트남 V-리그 2019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며 '호찌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준우승을 바탕으로 호찌민시티는 올해 AFC(아시아축구연맹)컵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기쁨도 맛봤다.
AFC컵은 AFC 챔피언스리그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아시아 클럽 대항전이다.
정 감독이 이끄는 호찌민시티는 올해 기분 좋게 출발했다.
정규리그 2경기에서 2연승을 거뒀고, AFC컵 조별리그 F조에서는 2승 1무로 선두를 지키고 있다. 올해 치른 5경기에서 4승 1무로 무패 행진을 펼쳤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유행으로 번지면서 베트남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자 프로축구 일정은 모두 중단됐다.
정 감독은 "상승세가 멈추게 돼 아쉽지 않으냐는 베트남 기자들의 질문도 많았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축구 일정이 멈춘 데다 베트남 당국이 지난달 말 대중교통 운행 중단과 함께 외출 자제령을 선포하면서 정 감독은 꼼짝없이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인적이 없는 새벽 시간에 동네 근처를 1시간 정도 달리는 게 유일한 '집콕' 탈출구다.
더구나 AFC컵과 V-리그를 병행하면서 원정 경기가 늘어남에 따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자 정 감독은 3월 초 가족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터라 지금은 '나홀로 집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 감독은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이 베트남으로 올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다행히 아내가 한국으로 가면서 냉장고를 채워놨다. 하지만 지금 냉장고가 점점 비어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주변 식당은 아예 문을 닫았다. 그나마 한인 마트가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서 식료품을 조달하고 있다"라며 "이정수 코치와 새로 영입한 서용덕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우리 집에 모여서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정 감독은 코로나19 때문에 구단 경영 여건도 나빠짐에 따라 스스로 임금 감축을 선택했다.
그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뜻을 모아 한 달치 월급을 반납했다"라며 "고통 분담 차원에서 내린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한국에서도 프로축구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은 물론 베트남도 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팬들이 축구를 즐기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mail protected]
(끝)